이론보다 현실이 급하다
며칠 전 전임법무부장관이 부동산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워크숍을 주관하였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한숨을 지은 적이 있다. 아무래도 부동산문제는 법률적 문제라기보다는 경제적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긴 정치인이 자신의 역량과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 연구하는 자세를 보여줬다는 점에선 의미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짚어보고자 하는 관점은 어려운 문제일수록 실무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나서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동산문제의 담당부서가 청와대가 되는 현실, 그리고 그토록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비전문적 지식과 비현실적 논리를 가지고 해답을 찾으려 했다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과학적 계산을 기반으로 한 과학기술분야에서도 학문적 영역에서 연구한 결과들과 실제 산업계에서 다루는 문제들과는 상당한 차이점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많은 실험적 검증과 보완이 필요하다. 교과서나 논문에 제기된 방식대로 결과가 얻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론이 틀렸다기 보다는 모든 현상에는 외적 영향인자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주된 현상을 왜곡시키거나 심지어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타난 현상을 세밀하게 점검하고 경험을 가미해서 해결책을 찾아야만 문제를 훌륭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머리 속에서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실제현상이다.

하물며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다루는 사회과학분야의 이론이나 논리는 말할 필요도 없다. 탄탄한 실무경험이 없이는 그저 탁상공론이 되기 쉽다. 행정가들의 생각과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절대로 믿지 않는다.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다양한 실무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의 분석과 세밀한 대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1987년부터 최근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아란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바꿀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그 말 한마디의 효과를 '그린스펀 효과'라고까지 불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아침 '오늘 아침 어떠세요?'라는 아침인사를 받고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는 일화는 상징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얼마 전 금융통화위원회 개최 전날에 청와대 비서관이 한은총재를 이례적으로 방문한 사건이 발생하고 금리가 요동친 적이 있다. 또 부동산 관련부처 장관이 언론에 대고 집값이 곧 떨어질 것이므로 지금 집을 사지 말라고 훈수했다는 언론 보도 직후 곳곳에서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급등하는 추세를 보였다는 코미디 같은 현상도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점을 대변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자조 섞인 시평이 안타깝기만 하다.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중의 여론이 악화되고 부동산 파동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건교부가 아닌 청와대가 책임을 진다고 하다가 재정경제부가 도맡는다고 하다가 다시 청와대가 끝까지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시중의 세평은 정권이 바뀌면 모든 제도가 다시 변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한편 어제는 정부가 최근 공지한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하는 대출총량규제를 다시 번복하는 일이 일어났다. 금융당국의 창구지도를 은행 측에서 과도하게 반응하였기 때문이라지만 어쨌든 현실적으로는 서민들의 사업자금을 변통하는 길마저 봉쇄당한다는 부작용이 문제가 된듯하다. 정부의 이와 같은 일련의 대책들이 시장전문가들이 주관하는 것인지 비전문가인 행정, 정치가들이 주관하는 것인지 조금은 헷갈린다. 제발 시장을 아는 전문가들이 믿음성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정치권은 입김을 차단해 주기 바란다. 근사한 이론보다는 살아가는 현실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by 나벌 | 2006/11/27 00:11 | 단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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